덕흥대원군묘(德興大院君 墓)
지정번호: 기념물 제55호
소재지: 별내 덕송리 산 5-13
조선 11대 중종의 제7남으로 14대 선조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이초(李苕 :1530~1559)의 묘이다.
창빈 안씨(昌嬪安氏)의 소생으로 9세때 덕흥군에 책봉되었으며 중형들인 12대 인종과 13대 명종이 왕이 되었다.
명종의 세자가 병약하여 후사 없이 일찍 사망하여 1567년 그의 셋째 아들 하성군(河城君)이 왕(선조)으로 즉위
한 후 2년 뒤에 대원군으로 추존되었다. 이때부터 대원군 제도가 시작하였다. 자는 경앙(景仰)이다. 덕흥대원군
은 3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천성이 영명하고 다재하여 학문과 덕이 뛰어 났다.
묘역은 사성으로 둘러져 쌍분으로 동남향하고 있는데 봉분 앞에는 묘표 및 상석과 망주석 1쌍, 장명등, 무인석
이 있다. 신도비(神道碑)는 묘소 아래 약 20m 지점에 북향하고 있다. 비는 1573년(선조 6) 건립된 것으로 비문
은 영의정 홍섬(洪暹)이 지었으며, 송인(宋寅:중종의 부마)이 썼다.사당은 인근 마을에 있는데 대원군의 위패와
모당(母堂)인 창빈안씨, 그리고 하원군(河原君)등의 위패를 모셨다. 한편, 선조는 왕이 되지 못한 생부를 위해
묘소라도 능으로 추존하고자 신하들에게 의견을 물었으나 반대에 부딪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신도비 아래에는 덕흥대원군의 큰아들 하원군 부부 묘가 위치해 있다.
덕흥대원군 묘는 남양주시 별내면 덕릉(德陵)고개에 묻혀있다. 덕릉(德陵)고개는 덕흥대원군 묘를 ‘덕릉(德陵)’으로 격상시킨 선조의 효성에서 유래된 고개 이름이다.
덕흥대원군묘 - 묘는 받침돌 없이 평평한 판석으로 된 상석과 향로석이 쌍릉 가운데 놓여있다.
덕흥대원군 묘지석 - 덕흥대원군 지묘라고 되어있다.
덕흥대원군묘 - 무인석, 장명등, 망주석
덕흥대원군 신도비(神道碑)의 귀부
묘역 안에는 돌로 만든 장명등이 있고, 좌우에는 한쌍의 망주석과 무인석을 각각 배치했다.
무인석
신도비 아래 덕흥대원군의 큰아들 하원군 부부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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