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생가(Dante,Alighieri,1265~1321)

 

불에 탄 것을 복원하여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두우모 성당과 시뇨리아 광장 가는 길 사이에 있다.  

이탈리아의 시인(1265~1321).피렌체의 정쟁(政爭)에 관여하였다가 추방되어 평생을 유랑하여 지냈다.

시(詩)를 통하여 중세의 정신을 종합하였으며, 르네상스의 선구가 되었다.

작품에 신곡, 신생, 향연이 있다. 

 

 

 

두오모 성당에서 시뇨리아 광장으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길에 단테의 초라한 생가가 있다.
 현재 이곳이 단테의 생가였다는 증거는 벽에 붙어있는 단테의 토르소가 전부이다.
 그가 이탈리아에 남긴 유산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지만 현재는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다.

 

 

단테의 생가임을 알리는 안내문과 단테의 초상(1265 이탈리아 피렌체~1321 이탈리아 라벤나)

그는 고향에서 추방 되었지만 후에 그의 업적은 이탈리아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었다. (신곡La divina commedia)

피렌체는 가죽 가공 산업이 발달한 도시로, 가죽을 재료로 한 가죽지갑, 가방, 가죽잠바 등이 유명하다.

 

 

단테의 토르소:

단테가 19년에 걸쳐 완성한 「신곡」은 서곡 1가, 지옥 편 33가, 연옥 편 33가, 천국 편 33가 등 모두 100가로 이루어진,

지옥으로부터 천국에 이르기까지의 순례담으로 당시에는 속어였던 이탈리아어로 쓰여졌다.

 

 

피렌체 단테 생가앞 보도 블록에 새겨진 단테의 얼굴모습

 

 

 바디아 피오렌티나(Badia Fiorentina)라고 단테가 다니던 교회 내부 모습.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만남 :

단테가  바디아 피오렌티나(Badia Fiorentina) 성당 앞에서 친구들과 함께 오는 베아트리체를 만나는 그림

베아트리체(Beatrice):

이탈리아의 위대한 시인 단테가 9세 때 첫눈에 반해(단테는 "그때부터 사랑이 내 영혼을 압도했네"라고 씀)

1321년 죽을 때까지 자신의 생애 대부분 과 시 작품을 바치며 사모한 여인. 단테는 40년에 걸쳐 완성한(신곡 La divina commedia)

에서 베아트리체를 찬미했다.

 

 

단테 성당안 수태고지(受胎告知), 프레스코화

 

피렌체 단테 생가 부근 풍경(201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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