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관음전(佛國寺觀音殿)

 

관음전은 조선 성종(成宗) 1년(1470)에 중수되었고 임진왜란시에 소실된 것을 선조37년(1604) 해청(海淸)스님이 재건하였다.

그 후 숙종 21-44년(1695-1718)에 걸쳐 중창되었다. 관음상은 현종(顯宗)15년(1674),숙종(肅宗) 27년(1701) ,영조(英祖)45년

(1769)에 걸쳐 개금(改金)된 것으로 전하는데 현재는 없어지고 1973년 복원공사 떄에 새로조성 봉안하였다. 불국사 관음전은

비로전 동쪽 언덕위에 있으며, 자비의 보살인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모신 전당이다.관세음보살은 남쪽바다 가운데 솟아

있는 보타락가산(補陀洛伽山) 중에서 한 쪽에 초록버들이 늘어져 넘실거리고 한쪽에는 푸른 대(竹)가 뻗어 올라 휘청거리는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계시면서 사람들이 "도와달라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도와 달라는 소리"를 듣기만 해도 곧 구원

손길을 뻗치니 천개의 손이 있고 천개의 눈이 있다 한다. 그래서 천수천안 관세음보살(千手千眼觀世音菩薩)이라고도 한다.

 

 

 

 

관세음보살입상 및 후불탱화

 

 

 

 

불국사 관음전(2017.02.13)

경주 양남 주상절리군(慶州 양남 柱狀節理群),위로솟은 주상절리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하서리,읍천리 일원 공유수면

 

천연기념물 제536호(지정일,2012.09.25)

경주 양남 주상절리군은 발달규모와 발달크기 및 형태의 다양성에 있어서 이미 지정되어 있는 타 지역 주상절리 천연기념물과는

뚜렷한 차별성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부채꼴 모양의 특이 주상절리를 비롯한 수평 방향의 주상절리가 대규모로 발달되어

있다. 화산암의 냉각과정 및 특성을 복합적으로 이해하는 연구 및 교육 자료로서의 가치를 가지는 데에 부족함이 없으며, 동해의

형성과정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학술자료를 제공한다.

 

 

 

 

경주 양남 주상절리군(慶州 양남 柱狀節理群),위로솟은 주상절리(2017.02.13)

불국사 사리탑,보물 제61호

 

불국사 강당 뒤쪽의 보호각에 보존되어 있는 사리탑으로, 「불국사사적기(佛國寺事蹟記)」에서 말하는 '광학부도(光學浮屠)'가 곧 이 사리탑을

가리킨다는 견해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여래의 사리탑인지 승려의 사리탑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겉모습이 석등과 비슷하게 생긴 사리탑으로,

리를 모시는 탑신(塔身)을 중심으로 아래는 받침이 되는 기단(基壇)을 두고, 위로는 머리장식을 두었다. 기단은 연꽃잎을 새긴 반원모양의 돌을

아래에 두고, 그 사이를 북(鼓)모양의 기둥으로 연결하고 있는데 기둥에 새겨진 구름무늬에서 강한 생동감이 묻어난다. 탑신(塔身)은 가운데

가 불룩한 원통형으로, 네곳마다 꽃으로 장식된 기둥모양을 새겨두었다. 기둥에 의해 나뉘어진 4면에는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안쪽으

로 움푹 파놓은 후, 그 안에 여래상(如來像)과 보살상(菩薩像)을 돋을새김하여 모셔놓았다. 지붕돌은 추녀끝에서 12각을 이루다가 정상으로 올

라가면서 6각으로 줄어든다. 경사면은 완만하며,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일부만 남아있다.평면이 8각인 기본형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

는 것으로, 화려한 조형과 섬세한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불국사 사리탑(2017.02.13)

당간지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46호
사찰에서 의식이 있을 때는 당幢이라는 깃발을 단다. 당을 매다는 긴 장대를 당간幢竿이라고 하며,

당간을 지탱하기 위해 양쪽에 세운 두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나란히 서있는 2쌍의 당간지주

중 동쪽 당간지주는 통일신라 때 세워진 것이지만,서쪽 당간지주는 기둥 크기와 제작 수법에 차이

가 있는 것으로 보아 각기 다른 부재를 후대에 조합한 것으로 추정된다.

 

 

 

불국사 당간지주(2017.02.13)

가구식 석축

 

불국사 가구식 석축(보물 제1745호)은 불전과 불탑 등을 배치하기 위해서 조성한 구조물로서,

경사진 지형 여건에따라 대웅전과 극락전 회랑 외곽에 자연석과 가구식 석축을 상·하 2단으로

조화롭게 축조했다. 장대 석재로 구획한 공간에 여러 형상의 석재를 채워 쌓은 가구식 기법과

석난간의 구성 등은 종합예술로 국·내외 유일무이의 구조다.

 

 

 

 

불국사 가구식  석축(2017.02.13)

대웅전(大雄殿),보물 제1744호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법당으로, ‘대웅(大雄)’,즉 ‘큰 영웅’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의미한다.

8세기 중엽 신라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불국사를 건립했을 때 처음 세워졌고, 임진왜란 중인

1593년 건물의 석조 기단을 제외하고 모두 불에 탔다. 1765년 남아있던 기단위에 앞면,

각 5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재건되어,통일신라 때의 기단과 조선 18세기의 건물이 결합

된 독특한 구조를 보인다.

 

 

 

 

 

 

불국사 대웅전(2017.02.13)

불국사 대웅전 영산회상도 및 사천왕 벽화,보물 제1797호

1769년에 영조의 딸인 화완옹주와 상궁 김씨등이 시주하여 제작한 불화로, 영산회상 탱화와 2점의 사천왕 벽화로 구성되어 있다.
영산회상도란 인도 영취산(靈鷲山)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법화경(法華經)'을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으로, 부처와 보살,

나한, 사천왕 등을 함께 표현한다. 그런데 불국사 대웅전 영산회상도의 경우 석가모니불과 보살, 나한을 한폭에 배치하고 사천왕

은 따로 벽화에 그려 넣어 독특한 구성을 보인다.이 불화는 18세기 중·후반 통도사와 봉정사 등 경상도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화승들이 함께 제작한 것으로, 화려하면서도 차분한 색감과 안정적인 구도 등 경상도 지역의 화풍을 잘 보여준다.

 

 

 

 

불국사 대웅전 영산회상도 및 사천왕 벽화(2017.02.13)

금동비로자나불좌상金銅毘盧舍那佛坐象(국보 제26호)

비로전의 비로자나부처님은 국보 제26호로 지정되었는데, 극락전의 금동아미타불좌상과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백률사 금동약사여래 입상과 함께 통일신라 3대 금동불의 하나로 꼽힌다. 높이 1.77m,머리 높이 55cm,

폭은 1.36m이다. 본래 대웅전에 모셔져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에 극락전의 아미타부처님과 함께 극락전으로

옮겨졌고, 그 뒤 현재의 비로전 주존불로 안치되었다. 비로자나불은 법신불(法身佛)이라고 하여 삼신불(三

佛)사상의 본존으로 여겨진다. 현재 대좌나 광배는 결실되고 불신만 봉안되어 있다.

 

 

 

 

불국사 비로전 금동비로자나불좌상(2017.02.13)

석가탑(釋迦塔),국보 제21호

 

석가탑, 다보탑이라는 이름은 인도 영취산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법하신 진리를 다보 부처님이 증명하였다고 하는 <법화경(法華經)>

 「견보탑품(見寶塔品)」의 내용에서 유래한 것이다. 두 탑 모두 8세기 중엽 신라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불국사를 건립했을 때 세워졌다.

석가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전통적인 신라 석탑으로, 높이 10.6m이다. 엄격한 조화와 균형의 미를 갖추어 통일신라 석탑을

대표하는 탑으로 꼽힌다. 1966년 도굴범에 의해 훼손된 석탑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

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을 비롯한 다수의 사리장엄(국보 제126호)이 발견되었다.

 

 

 

불국사 석가탑(2017.02.13)

다보탑(多寶塔),국보 제20호

석가탑, 다보탑이라는 이름은 인도 영취산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법하신 진리를 다보 부처님이 증명하였다고 하는 <법화경(法華經)>

 「견보탑품(見寶塔品)」의 내용에서 유래한 것이다. 두 탑 모두 8세기 중엽 신라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불국사를 건립했을 때 세워졌다.

다보탑은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삼층석탑 형식인 석가탑과는 달리 목조건축의 여러 요소들을 조합한 독창적인 형태의 탑으로,높이10.3m

이다. 기단위에 놓인 돌사자는 원래 4마리였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없어져 현재 1마리만 남아 있다. 탑 내부에 안치되었던 사리장엄

도 1925년의 수리공사 때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불국사 다보탑(2017.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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